[이민 노트] 오직 하나님만

이민 노트

오직 하나님만

미국 이민 이십 년, 그 첫 밤의 이야기

돌아보면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만일 그때 이 땅에 오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답은 아직도 없다. 그저 그 질문을 품은 채로, 나는 이십 년을 살아냈다.

시작은 2004년 12월 29일 밤이었다. 뉴욕, JFK 공항. 나는 혼자였다.

누구나 그렇듯, 정든 고향과 가족을 두고 아무도 없는 땅으로 오기까지 내 안에는 두려움과 설렘이 함께 있었다. 사실 나를 떠나게 한 건 대단한 꿈이 아니었다. 한국에서의 삶이 힘들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 입학을 앞두고 있었지만, 등록금이 없어 포기했다. 직장에 들어갔어도 공부에 대한 미련이 남아 마음을 잡지 못하던 차였다. 그때 삼촌이 물었다. “미국에 올래?”

나는 기도로 무작정 준비했다. 그리고 500불을 손에 쥐고 이곳에 왔다. 그게 내가 가진 미국의 전부였다.

입국 심사대 앞에서 나는 많이 떨었다. 영어를 못했으니까. 준비한 몇 마디를 속으로 계속 되뇌었다. 무엇을 물으면 이렇게 답해야지, 저렇게 답해야지 — 그 문장들에 매달린 채 줄을 기다렸다. 다행히 무사히 통과했다.

짐을 찾아 나오니 외삼촌이 나를 맞아주었다. 반가운 얼굴 하나. 하지만 우리는 같이 사는 게 아니었다. 삼촌이 지내던 방에 내가 들어가고, 삼촌은 다른 곳으로 갔다. 나는 낯선 가정집의 룸메이트가 되었다.

며칠 뒤면 2005년, 새해였다.

나는 해마다 12월의 마지막 밤을 교회에서 보냈다. 송구영신 예배. 사람들 틈에서 지난 한 해를 내려놓고 새해를 맞이하던 그 밤이, 내겐 한 해의 매듭이었다. 그러나 그해에는 교회에 가지 못했다. 낯선 방, 삼촌이 비워준 그 자리에서, 나는 혼자 예배를 드렸다.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한 채 기도했다. 이 땅에서 견디게 해 달라고. 잘 살아낼 수 있게 해 달라고.

그때는 몰랐다. 그 기도가 앞으로의 이십 년을 어떻게 데리고 갈지. 그 밤의 나는 그저, 이 낯선 땅에서 무사히 살아남기만을 바랐다.

· · ·

이 땅에서 살아가려면 마음만이 아니라 숫자와 서류의 세계를 배워야 했다. 유학생 신분을 지키는 일, 처음 받아 든 세금 서류, 신용을 만드는 일 — 아무도 먼저 알려주지 않았고, 나는 부딪히며 하나씩 배웠다. 그 배움이 결국 나를 세무사의 길로 데려왔다.

이 블로그에 나는 두 가지를 함께 남기려 한다. 하나는 이렇게 살아온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그 길에서 익힌 실질적인 것들 — 이민자로서 미국의 세금과 제도를 어떻게 헤쳐왔는지다. 나처럼 혼자 시작하는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덜 막막하기를 바라며.

이 글은 개인의 경험을 기록한 것으로, 세무·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세법은 수시로 바뀌며 적용은 개인의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글쓴이는 미국 연방 국세청(IRS) 앞에서 납세자를 대리할 수 있는 연방 인가 세무사(Enrolled Agent)입니다.

↑ 맨 위로

Scroll to Top